'종로구 3대째 운영하던 세공 재료상을 둘러싼 가족의 분열 '상속이 불러온 비극'(상속분쟁)
종로구의 재료상사들은 오랜기간 같은 자리에서 운영되는 곳이 많으며, 상당수가 가족 경영 형태로 운영된다.
특히 금속공예, 세공, 악세서리 재료, 도장(인장), 미술재료 등을 취급하는 상점들은 대대로 사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업종은 전문적인 기술과 노하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업으로 승계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운영하다보니 단골 고객이 많아질 수 밖에 없고, 특정한 공급망과 인맥을 형성해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종로구 세운상가, 종로3가, 을지로 일대에는**"아버지가 창업했고, 지금은 아들이 운영한다"와**같은 이야기가 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업은 종종 예상치 못한 갈등을 낳는다. 특히_공동 상속 문제는 가족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_
**1970년대,**민수(가명)씨의 할아버지는 종로구의 한 뒷골목에서 작은 세공 재료상을 운영했다.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뛰어났고,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작은 금속 조각과 세공 도구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단골도 적고 하루하루가 버거웠지만 할아버지의 성실함으로 단골 고객이 생겨나면서, 1990년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종로구에서 제법 이름을 알리는 가게로 거듭났다.
이 때부터 아버지와 형제들도 가게 운영을 돕기 시작했다.
민수씨의 할아버지는 후손들이 가게를 대물림하길 원했기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이 할아버지의 가게를 공동명의로 상속받게 되었다.
2000년대가 되면서 민수씨 아버지가 실질적으로 가게의 주인이 되어 운영을 했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처음에는 가게 일을 도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자기 길을 가느라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형제 1은 건축업에 뛰어들었고 형제2는 해외 유학 후 다른 사업을 시작하느라 무척 바빴다.
민수씨의 아버지가 실질적인 가게의 주인이 되어 꽤 오랜기간 운영을 한 뒤에도 가게명의는 여전히 공동 소유 상태였다.
아버지 曰 "어차피 나만 가게를 돌보니 이 가게의 소유주는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5년 이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을지로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작은 세공 재료상이 있던 건물도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니게 된거다.
그제야 가게에 관심이 없던 형제들이 하나 둘 나타나 이야기를 했다.
형제1: "우리 가게 팔자. 요즘 을지로 땅 값이 장난이 아니야. 지금이 기회야. 언제 또 하락기 올지 모른다고"
형제2: "그래 솔직히 우리가 이 가게에서 일하진 않았지만 우리 가게는 엄연히 공동명의야. 우리끼리 합의해서 가게를 내놓고 이를 현금화하면 좋겠어"
민수씨의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이로써 가족 간 갈등은 깊어졌고 결국 형제들은 변호사를 선임하며 이와같이 주장했다.
"공동상속인 다수의 의견 일치로 건물을 처분하고, 이를 공정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협의하자!"
아버지는 매우 절망했다. 한 평생 일군 가게를 지킬 방법을 위해 상속 전문 변호사인 윤지상 변호사를 찾아갔다.
윤지상 변호사는 이와 같이 전략을 내세웠다.
1) 특별수익권 주장 (기여분 청구)
윤지상 변호사는 민수씨의 아버지가 가게 운영에 기여한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즉 30년간 가게를 혼자 운영하며 발전시킨 점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핵심이었다.
2) 아버지 형제들의 '사전 증여' 주장
윤지상 변호사는 형제들이 부모님 생전에 이미 다른 재산을 증여받았다는 사실을 적극 주장했다.
법원은 형제1,2가 이미 상당한 재산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했고 이에 따라 가게에 대한 아버지의 지분이 더 크다고 판단해주었다.
이로써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남긴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남은 20%만을 현금으로 환산하여 지급받았고, 가게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셨다.
이처럼 또 다른 '상속이 불러온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종로구 재료상과 같이 가족 사업의 대물림이 계속 이어지는 업종은 반드시 상속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